김범룡 홈페이지 공지 사항




  안녕하세요~ 김범룡입니다. 2004/02/27
작년에는 여러모로 힘든 한해였습니다.

하지만 의미또한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런 한해가 되엇습니다.
인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2004년에는 저에게 바라는 많은 것들을 여러분들께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모든게다 여러분들의 성원덕뿐입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구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모든것 2004년에는 다이루시고..
항상 행복한 하루 하루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사랑하는 여러분들께 2004/02/27
올한해는 정말 뜻깊은 해였습니다.
여러분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항상 같이하는 마음으로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씩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모두 여러분의 덕분으로 이렇게나마 설수가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올한해 마감 잘하시고 건강조심하기를 기원합니다.
내년에는 여러분과 제가 모두 빛이나는
환하게 빛나는 그런 해가 되길 빌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요...

                                2003. 12. 21. 김범룡


  80년대 전자음악의 선구자 2003/12/24
1981년 박찬영과 빈수레라는 그룹을 결성해 활동해오다 1985년에 솔로 앨범 '바
람 바람 바람'으로 태풍을 몰고온 김범룡. 그는 데뷔곡인 '바람 바람 바람'으
로 그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특유의 고음역과 독특한 창법을 토대로
발표한 앨범마다 세곡이상의 노래들이 히트하면서 청소년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
았다. 특히 그의 데뷔곡인 '바람 바람 바람'은 전국 노래 자랑의 젊은 참가자
중 절반 이상이 부를 정도로 애창되었다. 1986년 2집, 1987년 3집, 1988년 4집
까지 겨울비는내리고, 그순간, 슬픔만주고, 현아, 마지막 입맞춤 등... 그는
1989년까지 발표하는 음반마다 히트곡을 연속적으로 내면서 최대의 전성기를 맞
이 하였다. 1980년대 전자음악의 시초가 됐던 그가 1990년대에 이르면서 주목받
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대중음
악 속에 1990년 불어닥친 댄스음악의 열풍은 그의 음악의 재변화를 요구했다.
그는 한 때 교통사고로 인한 좌절을 겪으며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 내면서 더
큰 세상을 보게 된다. 가수로써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뮤직디렉터의 체계적인 공
부가 필요했다고 느낀것이다. 1990년 그는 6집 앨범을 발표를 끝으로 유학을 결
심, 잠시나마 팬들을 떠나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뉴욕 예술전문학교에 다니면
서 뮤직 디렉터가 되기 위한 학업에 몰두했고 2학기를 수료하고 귀국한 후 1992
년 그 동안의 음악생활을 함축한 7집 '사랑, 그 이름 하나로' 를 발표한다. 큰
인기를 구가하지는 못했지만 성숙한 음악으로 돌아온 그를 팬들은 외면하지 않
았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그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쳐왔다. 1993년 3월, 그
는 대마초 흡연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것이다. 다행히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
지만 그 해 5월부터 각 방송에서 방송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좌절
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이 가수로서만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신인시절부
터 여러 가수들의 음반 제작을 맡으면서 성공을 거두고 있던 그는 시티뮤직이라
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제작자로 녹색지대, 진시몬, 솔트(SALT), 김영
배등을 발굴하고, 작곡가로 한혜진, 박윤경, 남궁옥분등의 앨범에 참여하며 음
반 프로듀서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는 각 방송사에서 출현금지가 해제되
어, 복귀 신고도 마치고 심혈을 기울인 8집 앨범을 준비중이다.

- 푸키뮤직에 어느팬이 올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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